
칵테일, 러브, 좀비로 유명한 조예은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으로 작가님을 처음 접했는데 다른 작품들도 기대됩니다.
소설은 크게 3파트로 나뉘어있습니다.
각각의 단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세계관이 동일하고 시간적으로 겹칩니다.
각 주인공별로 다양한 시점을 볼 수 있어 세 개의 큰 챕터로 나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2066년 6월 6일, 둠스데이라 불리는 이 날에 기존에 없던 기관이 생기는 병을 가진 사람이 나왔습니다.
눈이나 팔이 세 개가 달리고 목에 입이 생기는 등 원래의 모습을 잃게 만드는 질병에 감염자들은 미쳐갔습니다.
변형은 심해져 뇌로 침투하고 감염자들은 결국 이성을 잃고 피와 고기를 갈망하는 괴물이 됩니다.
'저주병'이라고 명명되는 이 병을 피해 사람들은 벙커로 대피합니다.
추후 이 벙커는 마을이 되어 마을 안의 사람들은 저주병이 발현되는 이를 추방을 통해 배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첫 챕터의 주인공인 '이교'의 친구 '램'이 마을에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램과 함께 물놀이를 하던 제로는 램의 목에 생긴 입을 보고 램을 신고합니다.
마을의 유지를 위한 첫 번째 원칙
'얼굴이 아닌 곳에 난 이목구비를 보면 신고하라'
제로는 착실하게 규칙을 따랐고 램은 그대로 잡혀가서 마을 밖 황무지로 추방당합니다.
추방자에게는 미트파이 한 판과 콜라가 지급됩니다.
미트파이에는 독이 들어있어, 추방자가 마을 밖의 감염자들에게 죽기 전에 인간으로 죽을 수 있는 '선택지' 입니다.
이교는 램이 울며 쫓아내지말아달라 매달렸다는 것을 추방을 담당하는 문지기인 삼촌에게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램을 고발한 것으로 칭찬을 받은 제로는 같이 물놀이를 해 줄 친구가 사라져,
남은 친구인 이교에게 물놀이를 제안하고 이교는 결벽증이 있다고 거절합니다.
'그럼 난 누구랑 수영하고 놀지, 이제...'
라는 제로의 독백은 어리기 때문에 무지해보이는 제로의 면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교는 결벽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교의 등에는 세번째 눈이 있습니다.
이교가 태어날 때 부터 있었던 그 눈은 몸이 두 개였던 첫째가 태어나자마자 추방당해 자식을 잃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아버지의 의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지금껏 상처로 위장해 살고 있었습니다.
이교는 일탈이라도 하듯 밤에 몰래 빠져 나가 홀로 물놀이를 즐기러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램이 추방당한 날도 계곡에서 램을 생각하며 물놀이를 하던 중 이교는 추락하는 비행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람'과 마주합니다.
람은 '감염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이교에게 '핸드폰'으로 조난신고를 요청하지만 이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이교를 보던 람은 놀라서 '구인류'냐고 묻습니다.
이교의 이야기를 듣던 람은 '하필이면 포비아들의 타운에 떨어지다니...' 라는 말을 중얼거립니다.
이를 통해 감염자를 배제하는 마을의 분위기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어떻게 보이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람의 말에 따르면 이미 밖은 감염자들과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며
그들이 이제 진화라고 부르는 신체변형을 거부하거나 실패한 사람을 '구인류'라고 표현합니다.
밖은 여전히 이교가 알고 있던 '둠스데이' 이전의 문명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역사 역시 이교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초기에 감염자들을 끔찍하게 여기긴 했으나 병이 그들의 식성이나 공격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감염자가 인류의 87%가 되자 그 때부터 질병이 아닌 진화라 명명하며 다양한 형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람의 비행기가 타운 밖으로 추락했기에 람을 밖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이교는 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운 밖을 벗어날 결심을 합니다.
이전부터 램과 함께 타운 밖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번째 눈을 늘 생각하며 추방당하는 상상을 많이 해왔었기에 이교의 결정은 쉬웠습니다.
심지어 제로가 그들의 모습을 목격한 것을 알았기에 이교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로는 또다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더이상 신고를 하기 싫어했기에
결국 이교는 스스로 세번째 눈을 드러내고 문지기인 삼촌의 인도아래 미트파이와 함께 마을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삼촌, 백우는 조카를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몰래 따라나온 외부인이자 감염자인 람을 발견하지만
둘에게 생존을 위한 총을 쥐어주는 것으로 침묵합니다.
여기까지가 이교가 주인공인 챕터1의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설정은 1챕터에서 확인되고 세계관이 너무 흥미로워서 빠져들어서 봤습니다.
2챕터는 문지기인 백우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이 주 임무 중 하나인 문지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식이 좋지 않은 직업입니다.
백우는 사실 큰 생각 없이 그 일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군인같은 문지기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느날 가까워지게 된 추방자들을 위한 미트파이를 굽는 '히노'와 가까워지면서 백우는 자신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히노는 자신이 구운 미트파이를 추방자들이 먹었는지를 궁금해했고 언제나 '먹지 않았다'라고 거짓말을 하던 백우는
어느날 히노와 함께 황무지로 나갔다가 독을 먹은 감염자를 조우하고 거짓말을 들키게 됩니다.
히노는 한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했고 얼마 후 백우와 다시 만났을 때 히노에게는 날개가 생겨있었습니다.
어깨에 손이 자라있었던 것입니다.
백우는 자신과 다시 이야기를 해주는 히노에 안심하고 잠들었고 다음날 히노가 마을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백우는 히노가 왜 자신과 나가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버림받았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히노는 백우에게 '미트파이 레시피'를 남기고 갔습니다.
조카인 이교를 추방하고 온 날, 백우는 몇 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미트파이를 다시 만듭니다.
백우는 결국 자신이 만든 파이를 들고 마을 밖으로 나섭니다.
황무지에서 그는 파이를 먹고 죽음을 기다리며 잠듭니다.
하지만 백우는 다음 날 황무지에서 눈을 뜹니다.
히노와 함께 황무지로 나간 그 날 이후로 히노가 독약병을 수면제로 바꿔치기했습니다.
그 이후 미트파이에는 한 번도 독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백우는 히노가 남긴 '미트파이 레시피'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황야 너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널 위한 쿠키를 구워둘게.'
이전에는 다른세계 혹은 사후세계의 느낌으로 읽혔던 '황야 너머'가 글자 그대로 황야 너머임을 알게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3챕터는 추방당한 램이 주인공입니다.
램 역시 미트파이를 전부 먹고 죽음을 기다렸으나 히노가 수면제로 바꿔치기 한 이후이므로
푹 자고 일어나서 황무지에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무사히 황무지에서 밤을 지냈다는 것, 수상할 정도로 주변이 깨끗하고 조용한 것을 통해
'사람을 잡아먹는 감염자'가 없음을 깨달은 램은
이교와 함께 상상하던 '황무지 너머'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걷습니다.
그러다 굶주림에 한계를 느낄 때 즈음 추락하는 비행기를 보게 됩니다.
(1챕터의 람의 비행기입니다)
추락한 비행기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많은 식량이 있었습니다.
얼마간 식량을 먹으며 버티던 램은 수원지로 쓰고 있는 물줄기를 따라 탐험을 하고
그곳에서 끊겨있는 다리와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시를 발견합니다.
타운 밖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램은 비행기에서 '실종신고가 접수되었고 현 상황은 괜찮은지 구조대가 곧 도착할거라'는 통신을 받게 됩니다.
그 시점에서 램은 이교를 생각합니다.
'이교, 황야를 지나면 다리가 나와. 그 다리를 지나면 새로운 세상이 있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하지 못했던 말을 뒤로하고 이교는 구조요청에 답을 합니다.
이교는 람과 함께 비행기를 찾으러 간 뒤 램을 찾으러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둘은 아마 순조롭게 만났을 것입니다.
람의 비행기가 실종된 것을 신고한 것은 람의 부모님이었기 때문에 램과 람의 부모님이 함께 있을 확률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람의 비행기에서 발견되어 셋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히노와 백우도 운이 따라준다면 만나서 다시 쿠키를 굽고 파이를 구우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멸망한 세상이지만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살아나는 사람들과 고립된 와중에도 고찰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위한 애정과 신뢰가 가득한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읽는 내내 다음을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고 기대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아쉽기도하지만 상상할 여지가 많아서 재미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소설입니다.
3챕터 뒤에는 작가님의 에세이가 하나 들어가있는데 후기같은 느낌이라서 같이 읽기 좋았습니다.
아래 접은글에는 인상깊었던 문장들을 모아두었습니다.
램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램이 애초에 없었던 척하는 거니까
그러므로 벙커는 곧 방주였다.
독이 든 파이는 추방자가 자신의 최후를 선택할 수 있게하는 마지막 배려였으며,
이 규칙은 타운이 생겨난 이래로 가장 유서 깊은 전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선택지'였을까요?
이교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표합니다.
세 번째 눈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고 이교는 생각한다.
목덜미에 생겨난 입은 분명 낯설지만 그 입이 살아있는 이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뭔데.
꼭 그들(감염자)이 나쁘길 바라는 것 같아
사람들은 당사자가 되고서야 인류를 위하는 척 공포를 조장하던 그 수많은 목소리들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어떤 타인도 자신과 완전히 같지 않다는 걸, 또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는 걸 받아들였다.
히노에게는 날개가 있다.
뼈와 살로 만들어진 날개다.
괴물 같은 건 사실 없었던 것 아닐까?
에세이 중
나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 오래 두고 보기는 커녕 다 먹기도 힘든 걸 만드는 마음이 궁금했다.
에세이 중
옆에서 멀뚱멀뚱 지켜보던 동생은 먹지도 못하는 걸 왜 만드냐며 질문을 똑같이 돌려줬고,
나는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다는 뻔한 대꾸를 했다.
많이 먹지 못하는 디저트를 만드는 동생과 만들고나면 끝인 블록을 쌓는 작가님
둘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에세이 중
만들어놓고 먹지 않는 디저트
블록으로 만든 눈 내린 오두막
손바닥만 한 트리, 샌드위치와 콜라 모양 지우개,
혹은 정교하게 반짝이는 음식 모형들.
진짜를 본뜬 가짜,
하지만 진짜와는 뭔가 다른 가짜.
에세이 중
청소는 내 담당이다.
에세이 중
우리는 가짜를 왜 만드는 걸까?
동생의 말대로, 먹을 수도 없는 그것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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